1968년 3월21일 오전. 이스라엘과 아랍국간 ‘6일 전쟁’이 벌어진 이듬해였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지방의 요단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미리 쌓아둔 나무덤불 속에서 이스라엘군을 기다렸다. 우리는 흥분했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침략자 이스라엘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스라엘 차량 엔진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내 심장도 두근거렸다. 나는 고성능 소총 시모노프의 망원 조준경으로 목표물을 응시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차량의 이스라엘 병사 머리가 타깃이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방아쇠를 당겼다.
나는 저격수였다. 팔레스타인의 저격수였다. 당시 열일곱 살이었지만 나는 훌륭한 킬러였다. 전장에서뿐만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곳곳에서 유대인을 살해했다. 민간인인지 군인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이었다. 모든 유대인은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독인도 테러 대상이었다. 기독인의 집에 수류탄을 던졌고 기관총을 난사했다. 모두 자발적이었다.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한때 나의 별명은 야자르(Jazzar), 즉 ‘도살자’였다. 나는 이 별명이 좋았다.
유대인에 대한 적개심
지난 16일 이 ‘도살자’ 타스 사다(59)씨가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사를 찾았다. 이날 그는 총 대신 성경책을 지니고 있었다. 영화 ‘용서’와 그의 간증집 ‘나는 팔레스타인의 저격수였다’(스토리셋 간) 홍보차 방한한 그는 사람을 죽이는 킬러가 아닌 사람을 낚는 어부로 한국을 찾았다고 말했다.
타스는 51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알브레이즈 난민 캠프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부 수립으로 인해 팔레스타인인들이 쫓겨났고 타스 가족도 사우디아라비아로 거처를 옮겼다. 이들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이방인이었다. “유대인에게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비난을 들었어요. 자동차 정비소를 시작한 아버지도 이 때문에 곤욕을 많이 치렀지요.”
타스는 학교에서 문제아로 몰렸다. 게다가 학교는 유대인을 몰아내야 한다고 가르쳤다. 타스는 팔레스타인인을 가자지구에서 쫓아낸 유대인에게 적개심을 품기 시작했다. 타스 가족은 카타르의 수도 도하로 이주했다. 타스는 그곳에서 자동차 세일즈맨으로 성공하는 듯했다. 하지만 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빼앗긴 팔레스타인 땅을 찾는 것이었다.
67년 6월 5일.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이 카타르에 나타났다. 6일 전쟁에서 패한 직후였다. “아라파트는 평소 친분이 있던 아버지가 마련한 환영식에서 당시 아랍권 정부들의 무능력을 비난하고, 자신들이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어요. 저도 그 자리에 있었죠. 아라파트 연설에 크게 공감한 저는 아버지 몰래 다마스쿠스로 향했어요.” 아라파트가 조직한 무장단체 ‘파타’의 본부가 그곳에 있었다.
‘도살자’ 별명을 얻다
타스는 파타의 훈련소에서 사람을 쉽고 빠르게 죽이는 법을 배웠다. 자동소총 칼라슈니코프 사격부터 유도와 공수도를 배웠다. 완전 군장하고 2, 3층 건물과 시속 60㎞로 달리는 차량에서 뛰어내리는 훈련도 했다.
두각을 나타내자 저격수로 뽑혔다. 3∼4일 동안 계속되는 전투에서 살아남기, 적은 식량과 물만으로 버티면서 목표물을 기다리기 등도 익혔다.
첫 번째 임무가 부여됐다. 그는 밤새 창고 지붕 위에서 목표물을 기다렸다. 뼛속까지 시린 추위였다. 하지만 계속 집중했다. 몇 시간 후 목표물이 망원경에 들어왔다. 민족의 적이었다. 타스는 숨을 멈추고, 방아쇠에 손을 걸었다. 총 맞는 장면을 보지 않으려 눈을 감고 방아쇠를 당겼다.
암살 임무는 계속됐다. 그럴 수록 사람 죽이는 일이 점점 대수롭지 않았다. 심지어 민간인까지 죽였다. 정당방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폭력성에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이들은 어린이들이 탄 스쿨버스를 공격하고, 민간 비행기를 납치했다. 또 지휘관들에게 환멸을 느꼈다고 했다. 이들은 군자금을 빼돌려 자기 배만 채웠다. 타스는 자신이 죽인 사람들과 가족들 생각이 문득문득 났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킬러의 미국행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일은 뜻하지 않게 진행됐다. PLO가 요르단에서 궁지에 몰릴 즈음이었다. 대책회의에 참석한 아라파트가 타스를 알아보고 그의 아버지에게 연락했다. 그는 강제로 가족들이 있는 카타르로 돌아왔다. 이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전쟁터에 못 나가게 하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이었다.
미국에서 그는 삶의 전환점을 맞는다. 결혼하고 레스토랑 매니저로 자리 잡았을 때였다. 친구인 찰리 샤프가 그에게 예수를 소개했다. 이슬람교에서 말하는 예수가 실제 누구인지 성경을 통해 설명했다. 이날 타스는 성령을 체험했다.
“거의 의식을 잃었는데, 한줄기 빛이 다가왔어요. 빛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라는 말씀으로 변했어요.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예수님 제 삶에 들어오세요’라는 말이 튀어나왔어요.”
이후 삶은 급변했다. 성경공부를 통해 그동안 저격수로 지은 죄를 철저히 회개했다. 유대인에 대한 적개심이 사라졌다. 타스는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못 배겼다. 미국에 사는 아랍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두들겨 맞았고, 카타르에 있는 부모에게 전도 편지를 썼다 살해위협을 당했다.
편지 답장은 간단했다. ‘미쳤구나. 즉시 이슬람교로 돌아오지 않으면, 만나는 즉시 죽여버리겠다.’ 아버지에게 전화했다. 아버지는 “지금 네가 나무 쪼가리(십자가)를 예배한다는 거냐! 구역질이 난다. 게다가 세 명(성부 성자 성령)의 신이라니”라고 소리쳤다.
97년 타스는 본격적으로 선교사역에 나섰다. 찰리가 세운 기독교 공동체 ‘하트랜드(Heartland)’에서 봉사했다. 중동 지역에서 간증하고, 미국에 사는 유대인·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또 미국 교계에 이슬람 종교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야세르 아라파트를 전도
타스는 아라파트가 죽기 6개월 전 직접 복음도 전했다. 2004년 워싱턴DC에서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서 그는 팔레스타인 사절단 리더를 알게 됐다. 그 리더는 타스의 경력과 변화된 삶을 듣고 아라파트를 만나게 해주겠다고 했다.
석 달 뒤인 2004년 5월. 일흔 넷의 전쟁영웅 아라파트를 34년 만에 만났다. 그는 그동안 하나님이 자신에게 행한 일들을 설명했다. 이후 아라파트를 만난 한 목사는 그가 예수를 영접했다고 전했다.
타스는 가자지구를 선교지로 택했다. 변심한 팔레스타인에게 치명적인 곳이다. 여전히 총격전이 벌어지는 그곳에 총 대신 복음을 들고, 전우가 아닌 아내와 함께 들어갔다. 아이들이 전쟁에 동원되지 못하게 2006년 유치원을 만들었고, 컴퓨터와 영어를 가르치는 문화학습센터를 세웠으며, 무슬림에서 개종한 기독인들과 성경대학을 열었다.
2008년 가자지구 출입이 어려워지자 그는 예리코에 집을 얻었다. 지금은 이곳을 거점으로 유대인·아랍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유치원, 문화학습센터를 운영하며 고아 과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자선사업을 벌이고 있다. 내년에는 예루살렘에서도 사역할 예정이다.
팔레스타인 땅을 찾기 위해 죽음을 불사했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주님은 유대인이 이 땅에 살기를 원하세요. 성경을 통해 약속하셨어요. 다만 이 ‘거룩한 땅’을 유대인과 타국인이 함께 누리길 원하세요. 하나님은 아랍인과 유대인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그는 중동 평화를 위해 한국교회의 기도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동의 갈등은 정치적인 게 아닌 영적인 문제라며 교회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주님을 아는 데 42년이 걸렸다. 다른 이들은 주님을 더 빨리 알게 되길 바란다”며 “이번 영화 ‘용서’가 충분한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영화 ''''용서''''는
타스 사다가 출연하는 영화 ''''용서''''는 팔레스타인 자치구 내 기독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영화 ''''회복'''' 김종철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회복의 주인공 데이비드 오르티즈 목사가 타스를 소개했다. 영화에서 타스는 저격수였다가 어떻게 하나님을 만났으며 이후 어떻게 변했는지 생생하게 간증한다. 타스 외에도 많은 기독인이 신앙을 고백한다. 팔레스타인 기독인 블리 나니아씨는 남편이 복음을 전하다 돌에 맞아 죽었다. 사빗씨는 총알이 든 협박편지를 받았지만 꿋꿋하게 신앙을 지키고 있다. 팔레스타인 자치구에는 기독인이 100여명 있다. 이슬람교가 국교인 이곳 사람들은 부모의 종교를 따라야 한다. 개종하면 반드시 처단해야 한다는 교리가 있다. 이 때문에 기독인들은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개봉은 내달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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