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금수강산꿈동이란 제목의 시를 인천일보 의정부 주재기자를 하던 시절 의정부문인협회 백일장에 응모하여 당선되었던 작품을 서원대 이병욱 교수님(당시 KBS국악관현악단장)께 드렸더니 시를 받고 너무나 감동하여 그날 밤 날밤을 새면서 작곡을 했답니다.
그리고는 동요로 작곡하여 김혜란 명창에게 곡을 주어 음반을 취입했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이 다시 편곡이 되어 저의 통일에 대한 그리고 젊은이들이 꿈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열정이 담긴 이 노래가 세상에 알려지기를 희망합니다.
저는 당시 엄청난 꿈을 가진 젊은이로 세상이 두려울 것이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시골에서 고등학교 영어교사를 하던 아내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였습니다.
이 당시는 결혼 초기에 저는 국민일보에서 직원으로 근무를 하던 시절로 기자가 되기 위하여 국민일보를 그만두고 마포신문사로 직장을 옮겼습니다.
뒤늦게 기자를 시작하던중 마포에 아현동 가스 폭발 사고의 제 기사를 보고 찾아온 연합통신 양정환 기자를 만나서 인천일보로 근무지를 옮겼습니다.
이 시절에는 제가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었던 시절로 승승장구하던 때였습니다.
그런 젊은이가 이 시에 걸맞는 일을 해야 한다면서 인생의 고민을 하던중 건강스포츠신문사 편집국장시절 우연히 명지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강의를 하면서 LA한인청과상조회 회장단이 한국을 방문하면서 (사)여성국극 이사장과 단원들의 제안으로 축하연에 사회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때 남산예술원에서 우연히 용산구청장을 만나서 용산구청장이 구청장실에 놀러오라고 하여 놀러 갔다가 구청장실에서 난생처음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청각장애인을 만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은 용산구청 공무원들과 서울서부지방법원 집행관들과 피튀기는 전쟁을 치뤄야 하는 날이랍니다.
불법으로 우리 장애인들의 주거 공간을 영장이나 집행결정문도 없이 집행하여 절도죄로 용산경찰서에 고소를 하는것을 도왔으며 어제는 문을 개폐하고 입주를 다시 하였는데 또 불법으로 시건장치를 설치하여 엄동설한에 장애인들을 사지로 내몰았습니다.
그리고는 공무원들이 한통속이 되었는지 동사무소만 아는 정보가 어떻게 건물주인에게 전달이 되었는지 의심이 되지만 앞뒤도 맞지 않는 불법의 출입금지란 내용의 글을 프린트로 인쇄하여 붙여 놓았습니다.
이는 조종자가 공무원들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수가 있는 사안으로 80세의 고령의 할머니가 한짓이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 봐도 알수가 있습니다.
결론은 누군가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지 않고서는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을 충분히 알수가 있는 고의적인 불법이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통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은 다시 경찰에 고소하여 재물 손괴 등으로 경찰에 도움을 요청할 것입니다.
제 노래는 이러한 저의 삶을 적나라하게 들려주는 노랫말이랍니다.
저는 ㅇㅓ제는 광주에서 상담하고 어제밤 순천으로 와서 순천에서 교통사고 장애인 환자 입원을 돕고 순천역에서 막차 23시 40분 기차를 타고 서울에 도착하여 오늘 일정중 중요한 자료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