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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통일문제연구 2014하반기 제26권 2호에 게재한 논문입니다]
북한 내 한류가 통일에 미치는 영향
이 용 희*
I. | 머리말 | V. | 통일전략 | |
II. | 북한 내 한류 분석 | VI. | 맺음말 | |
III. | 한류가 북한 주민 및 통일과정에 미치는 영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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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 동․서독 통일에 있어서 서독미디어의 역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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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문 초 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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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대규모 아사사태가 있었던 90년도 중후반부터 많은 북한 주민들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중국으로 탈북하였다. 이때부터 탈북자들과 중국 및 북한의 밀수업자들을 통하여 남한의 한류가 북한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90년대 말부터 시작한 한류는 갈수록 북한 내에서 더 확산되고 있다. 지금은 북한 젊은이들이 말투, 의복, 노래와 춤에 이르기까지 남한식 유행을 만들어 낼 정도로 광범위해졌다. 이러한 한류의 영향들이 북한사람들의 인식변화에는 어떠한 역할을 했고, 향후 통일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본 논문은 연구한다. 특별히 탈북자들 가운데 청소년·청년층 50명, 장년층 50명을 선발하여 전체 100명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고, 북한의 한류 영향력을 두 세대로 나누어 비교 조사했다. 또 동서독 통일과정에서 서독미디어의 영향력이 동독주민들의 인식변화와 통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것을 비교분석하면서 북한 내 한류가 통일에 미치는 영향과 통일전략에 대해 제안한다. | ||
• 주제어: 한류, 북한, 탈북민 설문조사, 미디어와 동서독통일 , 통일전략. |
Ⅰ. 머리말
1. 연구 목적, 내용, 방법
최근 한류가 세계적으로 일어나면서 북한 내에도 한류가 일기 시작했다. 폐쇄적인 사회 속에서 북한 정부의 일방적인 교육을 받아왔던 북한 주민들에게 한류는 큰 문화적인 충격이었다. 한류는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과 북한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데 큰 영향을 끼쳤으며 나아가서 탈북을 실행하는 데에도 영향을 주었다.
본 논문의 목적은 북한 내에서 확산되고 있는 한류가 북한 주민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한류를 통한 효과적인 통일 전략을 제안하는데 있다.
본 연구의 내용은 먼저 북한 내에 일어나고 있는 한류의 발생과 그 내용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실제적인 검증을 위하여 남한에 들어온 탈북민 중 100명을 표본으로 선정하여 한류에 대한 경험 여부와 본인에게 미쳤던 영향, 그리고 한류가 통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또 우리보다 앞서 통일을 이루었던 동서독의 통일을 돌아보면서 서독 방송이 통일에 끼친 영향을 분석하였고 그것이 남북한 상황에서는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한반도의 상황 속에서 한류를 통한 통일 전략으로 적절한 방안들을 모색, 제안하였다.
본 논문의 연구방법은 첫째, 기존의 한류에 대한 연구와 자료들을 검토하고 필요한 내용들을 본 연구 목적에 맞추어서 새롭게 정리하였다. 둘째, 북한의 한류 상황에 대해서 실제적인 파악을 위해 탈북민 100명을 선정하여 17가지 문항을 가지고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특별히 청소년, 청년층과 장년층 두 그룹으로 나누어 나이에 따른 세대별 분석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설문 응답자들에게 한류가 통일에 미치는 영향력과 함께 효과적인 한류 전파를 위한 방안들을 단답형으로 기술하도록 하였다. 셋째, 동서독 통일에서의 서독 미디어의 역할을 분석하였고 서독 미디어가 독일 통일에 미친 영향력과 북한 내 한류가 통일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비교해 보았다. 동시에 남북한 현실에 적합한 통일 전략을 제안하였다.
맺음말에서는 장성택 처형 이후 예측하기 어려운 북한 상황 속에서 한류를 통한 통일 전략이 왜 중요한지를 언급하였다.
2. 선행연구
1990년대 후반에 북한 주민들에게도 한류가 유입되기 시작했고 2000년대 중반부터는 다양한 언론을 통해 북한 내 한류 상황이 보도되었다. 외부 방송이 북한 내 미치는 영향과 주민 의식변화에 관련된 연구로 이주철(2003)은 1990년대 북한내부에서 KBS 사회교육방송을 청취하였던 주민들의 의식변화를 연구했다. 박정란, 강동완(2010)은 북한에서 남한 영상매체가 비공식적인 다양한 방법과 루트를 통하여 내륙지방까지 널리 확산되었고 이러한 남한의 영상매체를 통해 북한 주민들은 의식에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고 해석했다.
윤선희(2011)는 폐쇄적 환경 아래의 북한 청소년들이 한국 미디어 시청을 통해 하위문화의 변화를 이끌며 이를 북한 문화 권력의 도전으로 해석했다. 박정란, 강동완(2011)은 북한 내부에서 한류 문화가 유통되는 과정을 통해 공산주의 체제하의 북한 문화에 반하는 하위문화가 형성되는 과정과 현황을 연구했고 이는 남북한 주민의 문화적 통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해석했다.
오양열(2011)은 북한에서 한류가 특수계층이나 특정지역을 넘어 대중화 되었다고 주장한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을 넘어 일부 젊은이들은 남한 내의 십대문화를 직접적으로 수용하고 확산시키고 있다고 했다.
정은미(2011)는 지금까지 많은 한류에 관련된 연구를 일별하며 한류의 연구가 부상하게 된 배경과 함께 정형적인 해석으로만 일관해온 기존 연구들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분석하여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였다. 또한 박정란, 강동완(2012)은 특별히 남한의 미디어에서 경험하였던 선정, 폭력 등의 묘사들을 통하여 남한에 대한 왜곡된 상이 고착되어져서 역기능적인 영향이 있음을 나타냈다. 전희락, 박종렬(2013)은 북한에서의 한류가 전형적으로 문화 확산모형에 따라 확산되었고 북한 주민들은 한국 문화의 유행을 모방하며 한국 사회를 동경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독일의 통일 과정과 현재 남북한의 상황을 비교 분석한 연구도 있다. 이우승(2006)은 독일 통일과정에서 동서독의 방송정책과 주민들의 시청현황을 분석하며 통일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 연구했다. 진행남(2011)은 서독의 방송 미디어 콘텐츠가 독일이 통일되는데 큰 역할을 했음을 분석했다. 그리고 현재 북한 내 한류의 상황과 독일의 통일과정을 비교하며 한류를 통하여 북한 내에서도 통일의 단초가 될 수 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본 연구는 현재까지의 연구를 통해 축적되어진 북한 내 한류에 대한 정보와 의견들을 기본적 바탕으로 하여 최근의 한류현황을 분석하며 더 나아가 통일전략으로서의 한류를 고찰하고 있다. 최근 한류현황을 분석함에 있어서 탈북민들의 탈북한 시기 순으로 3가지로 구분했으며 특별히 이전 연구와는 차별적으로 청소년·청년과 장년으로 구분하여 연령에 따른 한류 영향의 차이점을 비교해 보았다.
본 연구는 최근에 화두가 되고 있는 통일이라는 주제에 맞추어 동서독 통일이 남북한 통일에 주는 시사점과 함께 한걸음 더 나아가 한류효과 극대화와 탈북민을 통한 통일전략에 주안점을 두었다.
II. 북한 내 한류 분석
1. 한류의 생성과 발전
1999년 베이징청년보(北京青年报)에서 한류(韓流)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사용됐다. 이때는 한국의 대중문화와 연예인들에게 심취하는 젊은이들이 한국풍의 유행을 만들어 내는 것에 대해 경계하기 위해서 이 단어가 사용되었고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했다(유상철 외, 2005). 이후 한류로 불리기 시작한 한국의 TV드라마, 영화, 음악 등은 2000년대 중후반을 거치면서 세계 많은 나라에 확산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싸이의‘강남스타일’이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한류는 미국과 유럽을 포함하여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한류의 발전과정을 3단계로 나누어보면 <표1>과 같다(진행남, 2011).
<표1> 한류의 발전과정
| 한류 1기 | 한류 2기 | 한류 3기 |
시기별 특징 | 생성기 (1997~2000년대 초반) | 확산 및 정체기 (2000년대 중․후반) | 신한류기 (2000년대 후반 이후) |
주요 지역 | 중국, 베트남, 대만 | 일본, 중국, 동남아, 중앙아, 중동, 아프리카 | 일본, 동남아, 중국, 유럽, 미국, 중남미 |
대표 콘텐츠 | 드라마<사랑이 뭐길래>, 음악 H.O.T. | 드라마<겨울연가>, <대장금> | 아이돌 그룹의 K-Pop |
(출처: 진행남, 2011: 4)
2000년대 중반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크게 히트를 치면서 일본 중년 여성층에 ‘욘사마(배용준) 신드롬’이 폭발적으로 일어났으며 일본 내의 한류 열풍으로 이어졌다. 뒤를 이어 TV드라마 대장금은 중국, 동남아, 중동, 아프리카, 유럽 등 세계적으로 한류 열풍을 일으켰으며 전 세계 사람들이 한류에 관심을 갖게 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최근에는 아이돌 그룹의 K-POP이 노래와 춤을 통해 한류를 퍼트리고 있으며 특별히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전 세계적인 열기를 불러일으켰다.
2. 북한 내 한류의 전파경로
90년도 중후반에 수많은 북한주민들이 굶어 죽으면서 수십만 명의 북한 주민들이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북하였다. 같은 기간 내에 중국에서는 한류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중국에 나왔다가 일정기간 후에 다시 북한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90년대 중반이후 지금까지 수십만 명을 상회하는 것으로 간주되는데 이들이 북한에서 한류를 전하는 역할을 했다. 탈북민들은 중국에서 한류를 접한 후 남한 소식과 함께 한류의 소스가 되는 자료들(CDR, USB, MP3, 노트텔 등)을 북한에 유입시켰다.
둘째로 북한 내 한류가 일어나도록 기여한 사람들은 중국 내 상인들과 이들과 함께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나들며 밀수를 행하는 북한의 보따리장수들, 브로커들을 포함한 상인들이다. 북한은 90년대 중반부터 배급이 중지되자 북·중간의 보따리 장사 등 밀수를 통한 상거래가 활성화되었고 이것은 장마당의 활성화로 이어졌다. 북중 밀수가 성행하면서 식품, 생활용품, 전자제품 등 각종 물품들이 중국을 통해서 북한 장마당에 쏟아져 나왔다. 이와 함께 비공개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한 것이 한류를 담은 CDR, MP3, USB 등 이었으며 남한 영상과 음악들을 잘 시청하기 위하여 노트텔과 중국TV, 남한TV 등이 장마당에서 활발하게 거래되었다. 한류의 바람은 장마당이 활성화됨에 따라 북한 내의 대도시들은 물론이고 지방 구석구석까지 확산되었다.
이와 같은 비공식 루트 외에도 북한의 최고위 지도층부터 하위 간부들까지도 한류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최고 지도자였던 김정일과 장성택은 물론이고 김정일의 아들들인 김정남, 김정철, 김정은 모두 한류를 즐겼다. 김정일은 ‘대장금’ 이영애의 열혈 팬이었으며 장성택도 남한TV와 영화를 매우 즐겼다고 전해진다.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은 물론이고 차남 김정철, 삼남 김정은 모두 남한 영상물들과 함께 성룡 액션 영화, 007 시리즈 등 외국 영상물들까지 섭렵했다고 한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많은 북한관료들의 중국 방문이 빈번해지기 시작했다. 탈북민이며 북한전문기자인 주성하(2014)에 의하면 중국을 방문한 북한 관리들이 20만 명이 넘었다고 하며 이들이 대부분 중국에서 유행하는 한류들을 접할 뿐 아니라 한류를 담은 재료들을 가지고 북한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이들은 고위층이기 때문에 검열에도 제외되며 비교적 자유롭게 한류를 접하고 있다.
각 지방의 간부들도 뇌물을 받고 장마당에서 유통되는 각종 한류 물품들을 눈 감아 주고 있으며 압수한 물품들은 폐기시키지 않고 본인들이 직접 시청하기도 한다. 또 뇌물을 주는 한류 유통업자들이 간부들 집에 가서 함께 남한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하는데 이는 간부 집에는 검열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 내 한류 조성에 기여하는 또 다른 그룹은 남한에 거주하는 탈북민이다. 대부분의 남한 내 탈북민들은 북한의 가족, 친지들에게 송금을 하고 있으며 송금 후에는 현금 수령 확인 전화를 하면서 북한 가족들에게 본인의 근황과 남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런 전화들을 통해 북한 주민들은 한류를 통해 보았던 남한 상황들이 사실임을 확인하게 되고 계속적으로 한류에 빠져들면서 남한, 탈북, 통일 등에 대하여 북한당국이 교육시킨 것과는 다른 각도로 생각하게 된다.
일부 탈북민들은 방송매체들을 통하여 남한 실황과 함께 북한 지도층들의 부패와 비리 등을 방송하고 있다. 또 다른 탈북민들은 북한에 대북풍선을 날리며 삐라를 통해 남북한 뉴스, 북한의 실체 폭로 등과 함께 CDR, MP3, USB 심지어는 미국의 1달러짜리 지폐까지 풍선에 넣어 보내고 있다. 이것은 예술, 연예, 오락이 아닌 또 다른 종류의 한류를 일으키고 있다.
이 외에도 탈북민 구출 등 대북사역을 목적으로 하는 NGO들과 종교단체들이 중국 국경 압록강, 두만강을 통해 북한 내 연결자들에게 돈과 식량과 생필품과 남한 물품들을 비밀리에 전달하고 있다. 또 연변 등 북한주민들이 넘어오기 용이한 조선족 자치구에 탈북민 처소를 마련하고 일정기간 중국 내 탈북민들을 돌본 후에 본인 의사에 따라 남한이나 미국 등 제3국으로 갈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이들 중 일부는 북한으로 다시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이들을 통해서도 남한 소식과 세계 뉴스들이 전달되고 있으며 북한주민들이 북한당국에 의하여 교육받아왔던 남한과 다른 나라들에 대한 내용들이 실제와 매우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3. 북한 내 한류의 확산과 그 영향력
일반적으로 북한에 들어온 한류를 빠른 시간에 유통시키며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통로는 전국 장마당이다. 한류에 대한 수요가 많고 거래하다가 발각되면 법적 처벌을 받는 위험 품목이기 때문에 마치 마약판매가 고수익을 창출하는 비밀거래이듯이 한류에 대한 상거래도 고수익을 동반하는 불법거래이다. 따라서 CDR, MP3, USB 등 한류 물품들을 거래할 때에는 발각되지 않도록 힘을 쓸 수 있거나 발각되어도 처벌받지 않도록 돌봐줄 수 있는 간부들이 연루되어있다.
많은 경우 안전하고 세력 있는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연계되어 중국으로부터 밀수를 주도해 나간다. 한 탈북자의 증언에 의하면 본인이 중국에서 북한으로 물품 운반하는 일을 했고 CDR 1개당 일정액을 받고 모두 넘겨주면 그 이후의 판매는 보위부 간부의 아내가 직접 진두지휘했다고 한다.(강동완·박정란, 2011: 48-49).
북한 내 주민들에게 한류의 영향력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아래 탈북민들의 증언은 이를 뒷받침한다.
“같이 장사하는 동료의 언니네 집이 함흥이었는데 거기에서 남한 드라마를 보았다. 그 집에서는 시간당 돈을 주고 빌려보고 있었다. 거기에서 <겨울연가>를 보았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3일 연속을 잠도 자지 않고 보았다. 다음 편은 어떻게 될까 하는 마음에서... 한국 드라마는 다음 편을 기대하며 기다리게 한다(탈북민 면접참여자15)”(강동완·박정란, 2011: 41) “드라마에 나오는 장면 하나 하나가 모두 한국이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정말 살기 좋은 나라구나, 한국에 가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저들은 생활수준이 높고 사람다운 생활을 하는데, 같은 땅에 같은 사람인데 우리는 왜 짐승처럼 살아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한국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린 아들(14살)도 한국에 가야 발전한다고 말했다(탈북민 면접참여자18)”(강동완·박정란, 2011: 129) |
필자가 지난 7, 8월에 3번을 만나서 면담했던 20대 중반의 탈북민 여성 이예림(가명)은 남한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남한 남성들에 대한 동경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이고 심지어는 폭력적이기도 한 북한남자들과 비교해 볼 때 남한남자들은 친절하고 여자들을 존중하고 위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남한에 가면 남한 남자들과 사귀고 남한 남자와 결혼하는 것을 꿈꿨다”고 말했다. 남성위주의 사회인 북한에서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차별받아 왔다. 또 90년대 이후 배급이 중지되면서 대부분의 남편들은 실직되자 자녀양육은 물론이고 가정의 생계유지까지도 여성들이 떠맡아야 했다. 대부분의 북한 여성들은 텃밭을 일구고 장마당에 나가 장사를 하면서 식구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류 드라마를 통해 “여자들에게 존댓말을 쓰고 또 심지어 여자한테 따귀를 맞고도 맞대응을 하지 않는 남한 남자들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여성들이 남한에 대한 동경이 더 크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고 실제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들 가운데 약 70%는 여성들이다(통일부, 2014).
그러나 한류의 영향력이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남한 드라마나 영화 중 불륜, 난잡한 성행위, 동성애 등을 소재로 한 음란물과 잔인한 폭력물에 대해서는 역겨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강동완·박정란, 2012: 251). 그래서 남한은 몹시 부도덕하고 난잡한 사회이며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남한에 살아보니 자신이 영화로 보았던 것 보다는 훨씬 건전하고 질서 있는 사회라고 말했다. 필자가 탈북민들과 대담하는 중 난잡한 성행위나 동성애 등에 대한 주제가 나올 때는 “다 때려죽여야 한다”는 과격한 표현을 탈북 남성들은 물론이고 탈북 여성들을 통해서도 반복적으로 듣게 되었다.*1) 이와 같은 부분들은 북한 주민들이 남한 사회에 대해서 퇴폐적인 자본주의의 산물이며 불순한 사회라고 생각하게 하는 요인들이다.
북한 내 한류가 주민들에게 끼치는 구체적인 영향력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구체적으로 100명의 탈북민 설문조사를 통해 설명하고자 한다.
III. 북한 주민 및 통일과정에 미치는 영향
본 연구는 실제적인 검증과 최근 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2달여에 걸쳐 탈북민들과의 개별 면담, 소그룹 좌담회 그리고 100여명의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17가지 항목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북한 내 한류가 북한 주민들에게 미친 영향력을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실제 북한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차선으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100명을 선정하여 한류에 대한 의견을 조사하였다.
100여명의 탈북민들을 선정하는데 있어서는 표본집단이 한 성향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현재 남한 내에서 탈북민 구출 사역과 탈북민 정착을 실제적으로 잘 진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4개 단체와 북한/탈북민 사역 전문가들의 협조를 구했다. 대표적으로 탈북민 구출을 많이 하는 국제교류협력기구 탈북민센터와 탈북민 정착사역을 모범적으로 하고 있는 남북사랑네트워크와 서빙라이프 그리고 탈북한 청년들의 사회봉사모임과 토요스터디모임 등 여러 기관에 골고루 배분하여 100명이 넘는 탈북민들을 표본 집단으로 구성했다. 설문지도 일시에 100명을 소집하여 받은 것이 아니라 기관마다 협조를 구하여 소그룹으로 설문을 받아 100명을 채웠나갔기 때문에 설문조사 기간이 약 2달이 소요되었다.
특별히 청소년과 청년층(16세부터 30세까지) 50명, 장년층(31세부터 57세까지) 50명을 각각 선정하여 100명의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전체 연령대가 16세부터 57세이며 실제적으로 남한사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정확한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연령대로 구성하였다. 또 자유롭게 의사표현을 할 수 있도록 무기명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설문조사 후 적합하지 않은 경우에는 표본 집단에서 제외하였다.
17개의 질문가운데는 첫째, 이들의 개인적인 인적사항을 파악하기 위하여 성별, 나이, 최종 학력과 직업, 북한에서의 거주지, 북한을 떠난 년·월, 한국 입국 년·월 등이 포함되었다.
둘째, 한류에 대한 접촉여부와 본인이 접했던 한류의 구체적인 내용, 또 이 한류가 본인에게 미친 영향을 세분화하여 1. 한류에 대한 종합적인 소감, 2. 한류를 보고 느낀 문화충격, 3. 북한정권과 체제에 대한 인식 변화, 4. 남한에 대한 기존의 인식 변화, 5. 한류가 본인의 탈북에 미친 영향에 대해 각각 질문하였다.
셋째, 한류가 탈북민들의 관점에서 향후 통일에 대해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알기 위해 1. 한류가 북한 체제 변화에 촉매가 될 수 있는가?, 2. 북한에 한류가 전파되는 것이 통일을 위하여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가?, 3. 어떻게 하면 한류가 북한에 더 잘 전파될 수 있을 것인가? 를 각각 질문하였다.
1. 탈북민 설문대상자 100명의 표본조사
<표2> 응답자 연령대 (단위: 명) | |||
| 남자 | 여자 | 계 |
청소년·청년 (만16-30세) | 15(30%) | 35(70%) | 50(100%) |
장년 (만31-57세) | 17(34%) | 33(66%) | 50(100%) |
합계 | 32(32%) | 68(68%) | 100(100%) |
<표3> 북한에서 거주지는 어디였습니까? (단위: 명) | ||||||||||
| 함경북도 | 양강도 | 함경남도 | 평안남도 | 강원도 | 평양 | 평안북도 | 황해남도 | 황해북도 | 계 |
청소년·청년 | 27 (54%) | 11 (22%) | 3 (6%) | 2 (4%) | 2 (4%) | 2 (4%) | 1 (2%) | 1 (2%) | 1 (2%) | 50 (100%) |
장년 | 37 (74%) | 4 (8%) | 3 (6%) | 2 (4%) | 2 (4%) | 1 (2%) | 1 (2%) | 0 | 0 | 50 (100%) |
합계 | 64 (64%) | 15 (15%) | 6 (6%) | 4 (4%) | 4 (4%) | 3 (3%) | 2 (2%) | 1 (1%) | 1 (1%) | 100 (100%) |
<표4> 북한을 떠난 지는 얼마나 됐습니까? (단위: 명) | ||||
| 0-5년미만 | 5-10년미만 | 10년이상 | 계 |
청소년·청년 | 28(55%) | 13(28%) | 9(17%) | 50(100%) |
장년 | 15(30%) | 12(22%) | 23(48%) | 50(100%) |
합계 | 43(43%) | 25(24%) | 32(33%) | 100(100%) |
<표2>에서 전체 탈북민설문 대상자 100명에 대한 남성대 여성의 비율은 32대 68이었다. 2장에서 언급된 것과 같이 북한 주민들의 탈북 상황은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많다. 2014년 통일부 자료에 의하면 2014년 6월까지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전체 숫자는 26,854명이며 남성과 여성 비율은 30대 70이다(통일부, 2014). 그러므로 본 설문조사의 표본집단에 여성 비율이 68%인 것은 탈북민 전체 비율과 비슷한 수준임을 보여주고 있다.
<표3>에서보면 탈북민들의 거주지는 단연코 함경북도가 가장 많으며 순위는 1. 함경북도 64%, 2. 양강도 15%, 3. 함경남도 6%이다. 2014년 통일부 자료에서 남한 내 전체 탈북민의 거주지 우선순위는 1. 함경북도 64%, 2. 양강도 12%, 3. 함경남도 9%이다. 그러므로 표본 집단의 거주지 분포는 전체 탈북민 거주지 분포와 비슷한 수준임을 볼 수 있다.
특별히 함경북도와 양강도에서 탈북자가 압도적으로 많이 나온 것은 첫째, 함경북도와 양강도 두 지역이 북·중간의 교류가 가장 활발함으로 남한 소식과 중국 소식을 쉽게 접할 수 있으며 한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지역이다. 둘째로는 지리적으로 탈북이 가장 용이한 지역이다. 함경북도의 경우 두만강은 강폭이 좁아서 도강이 용이하며 양강도 또한 압록강 상류·중류에 해당됨으로 도강이 가능한 지역이다. 하지만 평안북도는 중국과 접경이지만 압록강 하류 지역임으로 강폭이 넓어 도강이 매우 어려운 현실이다. 셋째로 북한은 거주 이전의 자유와 여행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주민들이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야 이동이 가능하다. 함경북도나 양강도에 살지 않는 사람들이 함경북도나 양강도 지역으로 옮겨와서 도강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음으로 다른 지역 주민들의 탈북 시도는 두 지역에 비해서 매우 어려운 현실이다.
<표4>를 보면 응답자 100명 중에서 북한을 떠난 지 5년 이내는 43%, 5년 이상-10년 미만은 24%, 10년 이상은 33%의 분포였다. 최근에 탈북하여 남한에 입국한 사람들이 가장 많음(43%)으로 이번 설문조사는 북한의 최근 상황을 비교적 잘 보여줄 수 있는 통계라고 생각할 수 있다.
2. 한류가 탈북민들에게 미친 영향
표본 집단의 경우 청소년, 청년층과 31세 이상 장년층을 두 그룹으로 각각 50명씩, 전체 100명을 비교, 분석하였다. 질문 내용에 따라 응답자가 응답하지 않은 항목들에 대해서는 해당 항문의 표본 집단 수에서 제외함으로 문항에 따라 각각 최대 100명에서 최소 89명이 응답하였다.
<표5> 한류를 접한 경험이 있습니까? (단위: 명) | |||
| 있다 | 없다 | 계 |
청소년·청년 (16-30세) | 49(98%) | 1(2%) | 50(100%) |
장년 (31-57세) | 40(80%) | 10(20%) | 50(100%) |
합계 | 89(89%) | 11(11%) | 100(100%) |
<표5>에 의하면 응답자 가운데 한류를 경험한 사람은 89%,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11%이다. 청소년, 청년층은 한류를 경험한 사람이 98%이고,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2%인 반면에 31세 이상 장년층은 80%가 경험을 했고 한류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20%가 된다. 한류를 경험하지 못한 장년층이 청소년·청년층보다 10배에 이른다. 이것은 청소년·청년층이 문화에 더욱 민감하고 적극적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한류를 미리 경험했다는 것은 남한 사회에 대한 간접체험이 됨으로 청소년·청년층이 장년층보다 남한사회에 대한 이해와 적응이 빠르고 쉽게 동화될 수 있음을 뜻한다. 실제적으로 탈북민 정착 상황을 보면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장년층에 비해 훨씬 빠르게 적응하는 것을 본다. 물론 나이가 어릴수록 교육과 적응이 용이한 점도 있지만 청소년·청년들의 한류에 대한 체험이 남한 적응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표6> 한류를 접한 경험이 있습니까?/북한을 떠난 년수 기준 (단위: 명) | |||
| 있다 | 없다 | 계 |
0-5년 | 43(100%) | 0(0%) | 43(100%) |
5-10년 | 24(96%) | 1(4%) | 25(100%) |
10년이상 | 22(69%) | 10(31%) | 32(100%) |
합계 | 89(89%) | 11(11%) | 100(100%) |
<표6>은 북한을 떠난 년수를 기준으로 한류를 경험한 사람들의 비율을 살펴보았다. 최근 5년 이내에 북한에 살았던 사람들 중에는 100% 한류를 경험했고 지난 5-10년 사이에 북한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96%, 10년 이전에 북한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69%가 한류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것은 최근에 북한에서 살았던 사람일수록 한류에 대한 경험이 높음을 보여준다. 즉 시간이 지날수록 한류가 북한 내에 더 많이 전파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표7>을 보면 전체 100명 중 89명이 한류를 경험했으며 이들 중 한류에 대한 ‘긍정적인 소감’이 97%(좋았다94%, 조금좋았다3%),‘나빴다’가 3%이다. 이는 한류에 대한 탈북민들의 평가가 압도적으로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탈북민의 한류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한류를 경험한 북한주민 전체의 긍정적인 평가보다 높을 수 있다. 한류에 대한 체험이 남한에 대한 간접체험이라고 간주할 때 한류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 부정적인 생각을 한 사람보다 탈북을 할 가능성이 당연히 높기 때문이다.
<표7> 한류를 접하고 난 소감은 무엇입니까? (단위: 명) | ||||
| 좋았다 | 조금좋았다 | 나빴다 | 계 |
청소년 ·청년 | 44(90%) | 2(4%) | 3(6%) | 49(100%) |
장년 | 39(98%) | 1(2%) | 0 | 40(100%) |
합계 | 83(94%) | 3(3%) | 3(3%) | 89(100%) |
<표8>은 한류를 경험한 탈북민 89명 중 91%가 ‘문화충격을 받았다’고 답했으며 문화충격을 받지 않은 탈북민들은 9%에 불과했다. 그러나 청소년·청년층과 장년층을 두 세대로 비교해볼 때 ‘문화충격이 없었다’고 한 청소년·청년층은 14%로, 장년층은 2%의 7배나 되었다. 탈북민들과의 개별면담과 그룹 좌담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은 한류를 접하고도 문화충격을 받지 않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남한에 대해서 선지식이 있거나 북한체제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많았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표8> 한류를 접하고 문화충격이 있었습니까? (단위: 명) | ||||
| 있었다 | 조금있었다 | 없었다 | 계 |
청소년 ·청년 | 36(73%) | 6(12%) | 7(14%) | 49(100%) |
장년 | 33(83%) | 6(15%) | 1(2%) | 40(100%) |
합계 | 69(78%) | 12(13%) | 8(9%) | 89(100%) |
어린이나 청소년 같은 경우에는 한류를 미리 접했거나 남한에 대해서 지식이 있는 부모들을 통해 남한에 대한 이야기나 설명을 들을 수 있고 또 가족이나 친척 중 남한에 있는 탈북민들을 통해 남한에 대한 소식을 직,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을 경우 남한의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문화충격이 적어진다. 또 최근 북한 경제 사정이 악화되어 소학교나 중학교 운영이 어려운 지역들이 많이 있다. 이런 경우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들은 북한교육이나 체제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했음으로 어렸을 때부터 주체사상과 반미·반남조선 교육을 철저히 받은 사람들보다 한류를 접했을 때 문화충격의 강도나 그동안 받았던 북한 교육과의 괴리감이 적을 것이다.
<표9> 한류를 접하고 북한(지도부)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으로 바뀌었습니까? (단위: 명) | ||||
| 그렇다 | 조금그렇다 | 아니다 | 계 |
청소년·청년 | 27(55%) | 12(24%) | 10(20%) | 49(100%) |
장년 | 29(73%) | 5(12%) | 6(15%) | 40(100%) |
합계 | 56(63%) | 17(19%) | 16(18%) | 89(100%) |
한류를 접하고 82% (그렇다 63%, 조금 그렇다 19%)가 북한체제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청소년·청년층에서는 약 80%가 장년층에서는 약 85%가 한류 때문에 북한체제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청소년·청년층의 경우 20%, 장년층의 경우 15%는 아니라고 답했다. ‘아니다’라고 답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북한에 대한 좋은 생각들이 바뀌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고 이미 북한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한류를 접하고 난 후에도 그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는 뜻이다. 90년대 중후반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절을 겪으면서 정부로부터 배급이 중단되고 그로인해 수많은 아사자가 속출하며 극심한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이미 북한체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함께 더 이상 북한체제에 대한 기대감이 상실되었다. 그래서 한류를 접했을 때도 북한체제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다’라고 답한 사람들 중의 일부는 북한체제에 대해서 긍정적이었고 한류를 접하고 난 다음에도 계속 긍정적인 경우이다. 북한체제의 우월성에 대한 신념이 확고한 경우도 있고 또 한류에 대해서 부정적인 느낌을 갖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한류를 접했다고 해서 모두가 북한체제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바뀐다고 볼 수는 없다.
<표10> 한류를 접하고 남한에 대한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었습니까? (단위: 명) | ||||
| 그렇다 | 조금그렇다 | 아니다 | 계 |
청소년·청년 | 30(61%) | 12(24%) | 7(14%) | 49(100%) |
장년 | 37(93%) | 3(7%) | 0 | 40(100%) |
합계 | 67(75%) | 15(17%) | 7(8%) | 89(100%) |
<표10>에 의하면 한류를 접하고 남한에 대한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뀐 탈북민들은 92% (그렇다 75%, 조금 그렇다 17%)이다. 그러나 8%의 탈북민들은 남한에 대한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2장에서 살펴보았듯이 한류를 접하고 나서 남한 사회가 부도덕하고 패륜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음으로 한류를 통해서 북한 사람들의 생각을 100%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표11> 한류가 탈북에 영향을 미쳤습니까? (단위: 명) | ||||
| 그렇다 | 조금그렇다 | 아니다 | 계 |
청소년·청년 | 31(63%) | 9(18%) | 9(18%) | 49(100%) |
장년 | 27(68%) | 9(22%) | 4(10%) | 40(100%) |
합계 | 58(65%) | 18(20%) | 13(15%) | 89(100%) |
<표11>에 의하면 ‘한류를 접한 것이 탈북에 영향을 줬다’가 85% (그렇다 65%, 조금 그렇다 20%)이다. <표7>에 의하면 ‘한류를 접하고 좋았다’가 97%였지만 실제로 탈북에까지 영향을 준 경우는 85%이다. 97%와 85%의 차이에서 탈북이라는 행동이 갖고 있는 위험성과 현실적인 제약을 생각할 수 있다. 탈북이란 목숨을 건 탈출이고 앞날을 확실히 보장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남한에 대한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겨도 실제로 탈북을 감행한다는 것은 또 다른 ‘위험행동’**2)이라는 것을 뜻한다.
3. 한류가 향후 통일에 미치는 영향
<표12> 한류가 북한체제 변화에 촉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단위: 명) | ||||
| 그렇다 | 조금그렇다 | 아니다 | 계 |
청소년·청년 | 42(84%) | 6(12%) | 2(4%) | 50(100%) |
장년 | 41(93%) | 1(2%) | 2(5%) | 44(100%) |
합계 | 83(88%) | 7(8%) | 4(4%) | 94(100%) |
<표13> 북한에 한류가 더 전파되는 것이 통일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까? (단위: 명) | ||||
| 그렇다 | 조금그렇다 | 아니다 | 계 |
청소년·청년 | 48(98%) | 1(2%) | 0 | 49(100%) |
장년 | 48(98%) | 1(2%) | 0 | 49(100%) |
합계 | 96(98%) | 2(2%) | 0 | 98(100%) |
<표12>에 의하면 ‘한류가 북한체제를 변화시킨다’고 생각한 탈북민은 96% (그렇다88%, 조금 그렇다8%)이다. 북한에 살다온 사람들 중 96%가 ‘한류가 북한체제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대답한 것에 대해서는 남한정부와 남북교류 및 통일정책 관계자들이 유념해야 될 것이다.
<표13>에 의하면 ‘한류가 더 많이 전파되는 것이 통일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답한 사람들이 100% (그렇다98%, 조금 그렇다 2%)이다. 전체 100명 중에서 북한에서 한류를 경험한 89명은 물론이고 북한에 있을 때 한류를 경험하지 못했던 11명 중 9명이 이 문항에 대답했다. 특별했던 것은 한명도 예외 없이 한류가 통일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표12>와 <표13>의 통계는 향후 통일 정책을 계획할 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사점을 갖는다. 남한 정부가 통일을 위하여 많은 인력과 재정을 드려 노력하고 있지만 북한에서 실제로 살다온 사람들이 100% 통일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하는 북한 내 한류 확산을 위해서 얼마만큼 인력과 자금과 시간을 드리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남한 정부가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김일성 주체사상과 선군정치를 앞세우는 북한 지도부의 큰 변화가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북한을 누구보다 잘 아는 탈북민들 96% (그렇다88%, 조금 그렇다8%)가 한류가 북한의 체제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전쟁 없는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완강한 북한 정권에 대하여 핵 포기를 강요하는 것보다는 남한 정부가 북한 내 한류가 대대적으로 유입되도록 우회 전략을 쓰는 것이 더 적합할 수 있다. 탈북민들의 96%가 대답했듯이 한류가 북한 내부에서 스스로 체제변화를 일으킨다면 북한 내 한류 확산은 남한으로서는 최상의 국가 안보 및 평화통일정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표14> 어떻게 하면 한류가 잘 전파될 수 있을까요? (복수응답) (단위: 명) | ||||||||||
| mp3, cd, usb, 노트북 (노트텔) | TV | 라디오 | 종교단체 NGO 대북사역 | 풍선 (삐라) | 탈북자 | 스마트폰 (핸드폰) | 밀수 | 남북교류 | 계 |
청소년·청년 | 15 (22%) | 12 (17%) | 7 (10%) | 7 (10%) | 4 (6%) | 7 (10%) | 7 (10%) | 7 (10%) | 3 (4%) | 69 (100%) |
장년 | 24 (29%) | 9 (11%) | 9 (11%) | 9 (11%) | 11 (13%) | 7 (9%) | 4 (5%) | 4 (5%) | 5 (6%) | 82 (100%) |
합계 | 39 (26%) | 21 (14%) | 16 (11%) | 16 (11%) | 15 (10%) | 14 (9%) | 11 (7%) | 11 (7%) | 8 (5%) | 151 (100%) |
마지막으로 <표14>는 북한에서 한류를 경험했던 탈북민들이 효과적인 북한 내 한류 전파를 위한 방안을 기입한 것이다. (객관식이 아니라 단답형 주관식 대답임 또, 복수응답 허용) 북한에서 살았었고 지금도 약 80%이상은 북한에 있는 가족, 친지들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 탈북민들이 가장 추천하는 방법은 CDR, MP3, USB 등과 이것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노트텔***3)을 북한에 유입시키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는 TV를 통한 한류전파이다. 최근 북한 내에서 남한TV 방송 시청 가능 지역과 실제 시청자 수가 늘어나는 상황이다. 따라서 북한 주민들이 더 많이 남한 방송을 볼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안들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세 번째로는 남한 라디오 방송을 통한 북한 내 한류 전파이다. 실제로 많은 탈북민들이 북한에서 남한 라디오 방송을 듣다가 탈북을 결심했다고 한다. 요덕스토리로 유명한 정성산 감독도 남한 라디오 방송을 청취하다가 발각되어 요덕수용소에 수감됐던 경우다. 어떻게 하면 북한주민들이 더 많이 남한 라디오 방송을 듣게 할 수 있을지 또 어떻게 하면 손쉽게 남한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 있는 라디오를 북한에 많이 보급할 수 있을지 모색해야 할 것이다.
공동 3위로는 종교단체 및 NGO의 대북사역을 통한 북한의 한류 확산이다. 종교단체들이 선교를 목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없는 북한 주민들과 교류하기 시작할 때 자연스럽게 돈, 식량, 생필품 등이 함께 북한에 유입되게 되며 외부세계의 소식이나 문화도 함께 유입되게 된다. 또 NGO나 종교단체들이 중국에 체류 중인 탈북민들을 구출하여 남한까지 가도록 돕고 있다. 이들의 탈북민 구출이 활발하게 되어 남한 내 탈북민들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탈북민들을 통한 북한 내 가족들에게 보내는 대북송금도 늘어날 것이고 이를 통해 장마당과 북한 경제가 더욱 활성화 될 것이다. 또 송금과 함께 북한 내부에 남한 소식도 더 많이 유입될 것이다. 이는 북한 내 한류를 더욱 활성화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다.
이와 같이 탈북민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북한 내 한류의 영향력과 통일 정책에 주는 시사점들을 고찰해 보았다. 다음 장에서는 동서독 통일에 있어서 서독 미디어의 역할과 한류를 통한 통일전략을 논해보고자 한다.
IV. 동·서독 통일에 있어서 서독미디어의 역할
앞 장까지 한류가 북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봤다. 그렇다면 실제로 ‘이 한류로 북한 체제가 붕괴되고 통일이 될 수 있는 가’를 생각해 볼 때, 독일의 사례를 통해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와 독일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하지만 독일이 통일이 되는 과정에서 서독 방송미디어가 막대한 영향을 미쳤고 그 영향으로 인하여 통일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1. 동독 주민들이 선호했던 서독TV 방송
세계 2차대전 후에 한국과 마찬가지로 독일도 동서로 분단되어지고 베를린 장벽이 세워졌다. 서독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동독은 공산주의 체제가 수립되어 서로 왕래가 제한되었다. 동독은 서독과의 교류를 차단했으며 당연히 동독 주민들의 서독TV 시청도 반대했다. 동독 정부는 서독TV 시청을 반대하는 옥센코프 캠페인****4)을 통하여 서독의 방송을 차단하려고 했다. 하지만 동독 주민들은 실내 안테나를 설치하거나 야간 안테나를 사용하여 계속해서 서독TV를 시청했다. 실제로 동독은 서독TV의 시청을 방해하기 위해 전파방해 등으로 수신을 막으려 하였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동독 정부는 서독 방송의 시청을 금지시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함으로 공공장소에서의 시청만 처벌하는 정책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동독정부는 교육을 통해서 동독 주민들이 서독TV를 시청하지 않도록 독려했고 이 같은 정책은 통일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동독정부가 동독주민들이 개인적으로 서독TV 시청하는 것을 처벌하지 않은 이유는 동독주민들의 욕구를 수용하여 누적된 불만을 잠재우는데 있었다. 동서독 분단 이후 동독 주민들의 서독TV 시청 욕구는 계속해서 높았다. 서독매체는 동독 주민들에게 정치적 정보(뉴스 포함) 제공과 퇴근 이후의 여가 시간에 기분전환과 오락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하였다. 동독을 탈출하여 서독으로 온 동독인들은 긴장해소, 정보, 오락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서독TV를 시청 했다고 말했다.
<표15> 동독인들의 TV시청률 | ||
대상 | 서독TV | 동독TV |
매일 시청 | 82% | 10% |
가끔 시청 | 6% | 72% |
(출처: 진행남, 2011: 59) 재구성 |
<표15>는 TV를 매일 시청하는 동독주민들의 서독TV와 동독TV 시청비율이 8.2:1임을 보여준다. 즉, 10명 중 서독TV를 보는 사람들은 8명 이상이며 동독TV를 보는 사람은 1명에 불과하다는 통계이다. 그래서 세간에는 “퇴근 후 저녁 8시에는 동서독이 통일된다.”는 말이 회자됐다. 각각의 집으로 돌아가서 저녁 식사가 끝난 후에는 동서독 주민들이 다함께 같은 서독TV를 보고 있다는 뜻이다.
<표16> 프로그램별 동독 주민들의 서독TV와 동독TV시청 빈도 | |||
| 서독TV | 동독TV | 시청빈도 Index* |
뉴스 | 85% | 14% | 6.1 |
정치 매거진 | 76% | 6% | 12.7 |
동독 관련 프로그램 | 76% | 6% | 12.7 |
영화 | 78% | 67% | 1.2 |
스포츠 | 48% | 36% | 1.3 |
콘서트, 연극, 오페라 | 18% | 10% | 1.8 |
*출처: Kurt Rolf Hesse, 1988: 42; 이우승, 2006: 22 재구성 **Index 수치가 높을수록 해당 장르에서 동독TV에 비해 서독TV의 시청빈도가 높음을 의미함 |
반베르크대학 헷세 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표16>은 방송프로그램 종류에 따라 서독TV, 동독TV 시청률을 각각 보여주고 있다. 시청률에 대한 여러 통계자료가 있지만 특별히 동독 주민들이 동독TV보다는 서독TV를 월등하게 많이 보는 방송 프로그램들의 종류와 또 동서독간의 TV시청에 있어서 큰 차이가 없는 방송프로그램들의 두 종류로 구별해 보았다.
첫 번째 그룹은 뉴스, 정치매거진, 동독 관련 프로그램으로, 서독TV와 동독TV간의 시청률 비율이 6.1:1, 12.7:1, 12.7:1으로 서독TV 방송 의존도가 약 6-13배까지 매우 높았다. 두 번째 그룹은 영화, 스포츠, 콘서트, 오락, 오페라 등 오락 및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으로 서독TV와 동독TV간의 시청률 비율이 1.2:1, 1.3:1, 1.8:1로 동서독TV간의 시청률 차이가 크지 않음을 볼 수 있다.
<표16>을 통해 두 그룹의 차이점을 분석해 볼 때, 독일 사람들은 국내외 뉴스와 정보, 정치적 이슈 그리고 동독에 관한 방송프로그램에 있어서는 동독TV 방송을 거의 신뢰하지 않고 서독TV 방송을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반면에 사실 여부가 문제시 되지 않는 오락,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는 동서독TV 방송을 구별 없이 시청하는 것을 보여준다.
2. 독일 통일 과정에서 서독TV 방송의 역할
서독TV 방송은 동독인들의 시청률이 동독TV 방송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을 인식하면서부터 프로그램 편성에 있어서 이와 같은 높은 시청률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첫째, 방송으로서 당연히 시청자들의 구미에 맞는 내용을 제작했다. 동독 사람들의 많은 관심이 정치적 이슈에 대한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정보였기 때문에 독일TV에서 다루지 않는 동독에 관한 뉴스들과 사실보도를 동독 시청자들의 입맛에 맞게 방송하기 시작했고 이것은 폭발적인 시청률을 이끌어냈다. 서독TV 뉴스 아나운서가 뉴스 도중에 “이 뉴스는 동독TV에서는 다루지 않은 내용입니다.”라는 멘트까지 방송되었다. 따라서 동독TV뉴스의 신뢰도는 더욱 떨어졌고 동독 주민들은 동독의 상황을 서독TV 뉴스를 통해서 알아가는 상황이 되었다.
둘째, 서독TV 방송은 동독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의 문제를 부각시킴으로써 간접적으로 통일운동을 일으키는 역할을 하였다. 동독 내에 반체제 운동, 개혁개방을 주장하는 세력들, 각종 시위와 항의 사건들을 공개적으로 방영함으로 음지에 있던 자유와 인권 운동을 공론화 시켰다. 또 반체제 지식인들과 종교인들에 대한 핍박과 감금, 비밀경찰들에 의한 감금, 고문 등 심각한 인권유린, 고위층들의 호화 생활과 부정부패 등을 폭로함으로 동독 공산체제의 문제점들을 전체 동독 주민들에게 여실히 드러내었다.
셋째, 탈동독운동을 일으켰다. 특파원들의 취재활동을 통해 동독을 탈출해서 서독으로 넘어오는 동독 주민들의 여정을 다큐멘터리로 방영했다. 헝가리-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으면 어렵지 않게 탈출할 수 있다는 것을 방송하였고, 탈출을 시작하는 시점부터 탈출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시간까지 모든 과정에서 탈출자들과의 생생한 인터뷰를 방영했다. 또 그 국경의 현장에서 생중계를 방영 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동독 사람들에게 동독 탈출을 위해 필요한 많은 정보와 함께 이를 감행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했다. 따라서 동독 탈출의 물결이 본격화 되었고 이는 동독의 붕괴를 가속화 시켰다(진행림, 2011).
넷째, 1989년 10월과 11월에 있었던 독일 혁명 과정에 있어서도 서독TV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0월 7일, 동독 건국 40주년 행사가 끝난 후에 있었던 사상 최대 규모의 항의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한 동독 슈타지(국가안전부)와 경찰의 무차별 폭력과 체포, 시위 대원들에 대한 구타와 구금, 강제해산의 모든 과정들이 방영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서독 기자들은 슈타지 요원들과 경찰들에게 온갖 구타를 당하고 체포되었으며 취재 카메라도 파손되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전국적으로 대규모 민주화 항쟁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고 각각의 도시마다 시민데모가 크게 일어났다. 결국은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라는 역사적인 사건과 함께 독일통일의 문을 열었다.
V. 통일전략
설문에 응답했던 탈북민들이 한류전파를 위해서 가장 많이 제안했던 항목들은 기능적인 방법으로는 CDR, MP3, USB, 노트텔 등이고 내용적인 접근으로는 남한TV와 라디오 방송이었다. 그리고 단체 활동으로는 각종 NGO들과 종교단체들의 탈북민 사역을 효과적인 방법으로 제안했다.
동독주민들처럼 북한주민들도 남한 TV를 자유롭게 볼 수 있다고 한다면, 동독에서 일어났던 현상이 북한에서도 발생될 수 있다. 지난 8월 6일 하나원과 하나센터에서 교육을 마치고 막 나온 탈북청년들과의 좌담회를 진행하면서 필자는 최근 북한TV 상황에 대해서 여러 탈북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5) 이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북한TV 방송의 현 상황은 전력난 때문에 방송 시간도 제한적이고 또 같은 내용을 재방송하는 경우가 많으며 너무 정치적이고 획일적이어서 재미가 없었다고 한다. 반면에 남한TV 방송이나 영화, 드라마의 경우 신기하고 재밌게 시청했었다고 말했다. 이것이 한류가 크게 번져가는 주요 요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서 남한TV 시청이 가능한 지역은 제한적이다. 또 전기 공급 시간이 지역마다 한정되어 있어서 원하는 시간에 시청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시청 가능한 지역에서도 발각되면 처벌되기 때문에 일반 서민의 경우 자유로운 시청이 어려운 상황이고 본 내용을 이웃과 나누는 것 또한 처벌받을 수 있다. 따라서 서독TV 방송이 주도했던 통일의 바람을 남한TV를 통해서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본 논문에서는 TV방송의 대안이 될 수 있는 대북 라디오 방송을 통한 한류 전파와 통일 전략을 고찰하고자 한다. 그리고 탈북민들이 실제로 도움을 받아서 남한까지 왔던 NGO들과 종교단체들의 탈북민 구출 사역이 어떻게 한류 전파와 통일 전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를 논한다.
1. 라디오 방송을 통한 한류 전파와 통일 준비
2011년 3-4월, 남한에 정착한 탈북민 19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북한에서 남한 라디오 방송을 청취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109명(55%)이었다. 이들이 청취했던 남한 라디오 방송들을 청취율이 높은 순서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김화순, 2011).
1. KBS 한민족방송(38%), 2. 자유아시아방송(16%), 3. 자유북한방송(13%), 4. 극동방송(11%), 5. 국군방송(6%), 6. 열린북한방송(4%), 7. 미국의 소리(4%), 8. 북한개혁방송(2%), 9. 자유조선방송(2%), 10. 자유의 소리(2%) 등이다.
위의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북한사람들이 관심 있는 프로그램의 순위는 1. 뉴스(38%), 2. 노래(18%), 3. 탈북자 관련 내용(16%)이었다(김화순, 2011).
북한 주민들의 관심은 동독 주민들의 경우와 매우 흡사하다. 동독 주민들이 서독방송을 청취한 가장 큰 이유는 정보와 오락이었는데 북한 사람들의 우선순위도 1. 뉴스(정보), 2. 노래(오락)로 나타났다. 폐쇄되고 억압된 체제가운데 사는 사람들의 공통된 욕구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또 동독사람들도 동독 탈출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있었고 탈출한 동독인들이 서독에서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서도 매우 궁금해 하며 관심을 기울였었다. 대북 방송에서 탈북자 관련 내용이 3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동독 주민들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청취율이 높은 10개의 방송 중에서 KBS는 국영방송이며 자유아시아방송, 미국의 소리는 미국 국가 재정으로 운영되는 방송이다. 이 3개를 제외한 7개의 민간방송 중에서 탈북민들이 운영하는 대북방송은 자유북한방송과 북한개혁방송 2개이다.
청취율이 13%로 자유북한방송이 민간부분 1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직접 운영하는 김성민 대표가 탈북민으로서 북한 동포들의 취향과 정서와 심리를 잘 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또 북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북한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북한 말투로 뉴스나 북한 이야기를 전해 줄 때 훨씬 더 신뢰감이 갈 것이다. 따라서 자유북한방송의 방송 시간이 매우 제한적(최근 하루 평균 1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청취율을 보이고 있다.
탈북민이 운영하는 대북방송은 특별히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과 고위 관리들의 호화 생활상과 부정부패의 실상을 방송하고 있는데 이것이 생각 보다 북한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사람들이 모르는 북한 이야기를 탈북민들이 방송을 통하여 내보낼 때 많은 북한 사람들이 큰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대북방송을 하는 탈북민들도 계속적으로 북한 내부에 있는 사람들과 전화하며 소식을 주고받기 때문에 북한 사람들의 필요와 관심사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6)
KBS는 국가 재정으로 운영이 된다. 자유아시아 방송과 미국의 소리도 미국 국가 재정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각각 30여명의 직원과 함께 좋은 시설과 장비를 갖추고 있고 연간예산도 각각 300만 불이 넘는다. 반면에 민간방송 1위인 자유북한방송은 3명의 직원에 열악한 재정과 시설 속에서 방송을 송출하고 있으며 연간소요예산은 30만 불도 되지 않는 상황이다.**7)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아시아방송(16%)과 청취율에서 큰 차이가 없으며 미국의 소리(4%)보다는 월등하게 높다. 투입된 재정 대비 청취율이 국영방송과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향후 라디오 방송 대북 청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영방송보다는 현재 잘 진행 중인 민간방송을 지원하는 것이 투자의 효율성에서 십 배 이상의 효과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북한 상황에 밝은 탈북민들을 대북 라디오 방송에 투입시킬 때 북한 주민들의 입맛에 맞는 내용을 효과적으로 제작하여 송출할 수 있다. TV와는 다르게 음성만으로 전달되는 라디오의 특성상 북한 말투를 쓰는 탈북민들이 방송할 때 북한주민들에게는 더 친숙할 수 있다.
라디오 방송의 장점은 프로그램 제작비가 적게 들고 북한 주민들도 적은 비용으로 청취가 가능할뿐더러, TV나 드라마 시청에 비해서 적발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 내 한류를 전파할 때 라디오 방송을 이용하는 것은 매우 전략적이고 효과적이라고 사료된다.
동서독 통일의 경우 1989년 9월부터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는 11월까지 정치적 격동기에 동독 주민들은 정치적 상황에 대한 뉴스를 서독방송뉴스에 전적으로 의지했었다.
북한에서도 만약 급변사태가 발생한다면 북한의 고위 간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간부들과 서민층은 국외뉴스를 통하여 북한의 객관적인 상황과 북한관련 국제적인 뉴스를 알고자 할 것이다. 왜냐하면 북한 뉴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지 않을뿐더러 필요시 사실이 아닌 보도도 의도적으로 내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은 동독주민들처럼 서독TV를 자유롭게 시청할 수 없기 때문에 북한의 급변사태 시 북한주민들이 가장 쉽고 편리하고 비교적 안전하게 청취할 수 있는 것은 라디오방송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대북라디오 방송을 활성화시킴으로 북한 주민들이 남한 라디오 방송에 익숙하도록 특별한 노력과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지금 많은 민간대북방송들이 재정적인 이유로 단파방송을 임대하여 하루에 1-2시간 정도만을 송출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대북방송들에게 국내 주파수를 배정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어렵다면 기존의 국내 라디오 방송들과 협조하여 일정시간들을 대북방송으로 사용할 수 있게끔 조정해야할 것이다. 동시에 북한 주민들이 손쉽게 대북방송을 들을 수 있게끔 양질의 소형 라디오를 북한에 많이 유입시켜야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하면서도 실제적인 방법들을 모색해야한다.
그러면 통일을 이룰 수 있는 결정적인 상황이 일어날 때 북한주민들에게 신속하고 정확한 뉴스제공과 함께 바른 길잡이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또 급변사태가 아닐지라도 점진적으로 남한상황을 바르게 알려나가고 통일을 위해 필요한 지식을 공급하는 국민교육적인 기능도 감당할 수 있다.
2. 탈북민들을 통한 통일전략
각종 NGO와 종교단체를 통한 대북사역이 탈북민들이 3번째로 많이 추천한 한류 전파 방안이었다. 그 동안 남한에 들어온 탈북민들의 대부분은 NGO 단체들과 종교단체들의 탈북민 사역의 구체적인 열매들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중국 내에 머무르고 있는 탈북민의 숫자는 약 7-20만 명이라고 추산한다. 불법거주이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를 알기 어렵고 여러 단체에서 다양하게 추측하고 있다. 지금까지 남한에 들어온 탈북자는 약 2만 7천명이다. 2011년 실시된 탈북민 조사 자료에 의하면, 응답자 중 72.1%가 북한과 지속적으로 소식을 주고받고 있다. 탈북 후 북한 소식을 ‘거의 대부분 접할 수 있었다’가 16.7%, ‘조금 접할 수 있다’가 54.4%로 발표되었다(김병로, 2012).
남한 탈북민의 약70%는 북한의 가족, 친지들에게 송금을 하고 있다. 이들이 보내는 돈은 브로커 비용 30%를 제외하고 70%가 곧바로 가족들에게 전달되며 보통은 휴대전화로 확인 통화를 한다(이용희, 2014: 333). 이들이 전화로 통화할 때 단순한 송금 확인을 넘어서서 피차간 안부를 묻고 더 나아가 남북한 상황을 얘기하게 된다. 그래서 탈북민을 통하여 북한 실황이 남한에 유입되며 남한 정보들도 북한에 전달된다. 최근에는 돈 이외에도 중병에 걸린 가족들을 위해서 북한에서 구할 수 없는 약들을 브로커 편에 전달하고 또 상황에 따라서는 특별한 남한 물품들을 전달하기도 한다.
북한에 가족들이 있는 경우에는 탈북민들이 1년에 1-2번 이상 송금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송금을 받은 가족들은 지역의 당 간부들과 보위부원들에게도 일정 금액을 상납하는 것이 관례이다. 필자가 탈북민들과 개별 면담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이들이 1백만 원을 보내면 4인 가족이 1년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송금된 돈들은 장마당 장사 밑천으로 쓰이기도 한다. 장마당 자리세가 올라서 수지가 안 맞을 경우에는 장사 대신 가축을 길러 일정기간 사육 후 다시 팔겠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백두혈통이 북한에서는 유명했지만 최근에는 남한에서 탈북민들이 보내는 돈을 통해 북한 주민들이 잘 살게 됨으로 가족이나 친척 중에 남한 내 탈북민이 있는 경우에는‘한라줄기’로 불리우는 신조어가 생겼다. 이제 ‘한라줄기’를 통한 통일전략이 세워져야 할 때이다.
공식적인 대북지원은 북한 주민들에게 직접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북한 주민들에 대한 직접지원을 늘리기 위해서는 남한 내 탈북민의 숫자가 증가해야 된다. NGO들과 종교단체들이 진행하는 탈북민 구출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민간단체 탈북민 구출 운동을 국민적 통일 운동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탈북민에 대한 관심과 안타까운 마음을 넘어서서 한 핏줄로서 책임 있는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탈북민 구출 캠페인’을 전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서는 탈북민 구출을 하는 민간단체들을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다.
탈북민 2만 명이 넘어섰을 때부터 탈북민들이 보내는 가족 송금과 남한 소식들이 북한에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남한 내 탈북민 숫자가 4만 명이 넘어선다면 북한에는 커다란 지각 변동이 생길 것이다. 송금 이외에도 탈북민들을 통하여 남한 소식을 전하는 것은 북한에 전파되는 한류의 가장 큰 뒷받침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탈북민들이 보내주는 송금은 가족들만이 아니고 전체 북한 주민들에게 남북통일에 대한 경제적 기대를 줄 것이다.
탈북민들을 통한 통일전략을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첫째, 제 3국에 있는 탈북민들이 신속하게 남한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도와야한다. 둘째, 탈북민들이 남한에 잘 정착하도록 도와야한다. 셋째, 탈북민들이 북한의 가족들과 친지들에게 가급적 자주 또 많은 금액의 송금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한다. 넷째, 이들이 한류를 일으키고 있는 라디오 방송, TV 드라마, 영화, 노래 등에 출연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야한다. 다섯째, 급변사태나 통일의 주요 과도기 그리고 통일의 첫 단계에서 남한 국민과 북한 국민을 연결하는 가교가 될 수 있도록 탈북민들에게 합당한 통일 교육과 리더십 훈련이 필요하다.
VI. 맺음말
북한 내 한류 전파는 자연스럽게 남북통일에 기여를 할 것이다. 그런데 특별히 한류 전파를 통한 통일 전략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장성택 처형 이후 예측 불허한 북한의 내부 상황을 고려할 때 급변사태도 발생 가능한 상황이다. 점진적인 통일 과정에서도 한류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북한의 급변사태 발생 시 한류의 역할은 더 중요할 수 있다.
북한 내 실세들의 권력 암투가 장성택 처형 이후에도 계속되어지고 김정은이 표면적으로만 국가 원수로 있던지, 김정은 자체가 실각되어 또 다른 국가 원수가 세워져야 한다면, 북한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기점에 서게 될 것이다. 북한의 경제적인 몰락은 이미 자체적으로는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 만약 정치적으로도 불안정한 위기 상황이 된다면 새로운 정권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중국과 남한중에 한쪽을 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친중파(親中派)가 새 정권을 장악한다면 중국의 우산 속에 들어가게 될 것이고 통일의 가능성은 요원해지게 된다. 반면에 친한파(親韓派)가 새 정권을 장악한다면 남북한의 통일 교류는 급속하게 진전될 것이고 민족적 숙원인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이미 북한 지도층에 대한 신뢰가 희박해 졌다고 봐야한다. 특별히 청소년과 청년층의 경우 더욱 그렇다. 지난 7월과 8월에 최근 남한에 입국한 탈북 청년들과의 좌담에서 필자가“전쟁이 나면 참전하겠는가?”라고 질문했을 때 탈북 남성청년 5명 중“참전하겠다”고 대답한 청년은 한명도 없었다. 그들의 대답은 “전쟁은 국가가 할 것이다.”,“나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고 대답했다. 배급도 주지 못하고 교육과 의료혜택도 베풀지 못하고 장마당에서 자리세만 받아가는 정권에 대해서 더 이상 신뢰도 없고 관심도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 후에도 이 같은 대답을 최근 탈북한 청년들을 통해서 반복적으로 들었다. 이것이 지금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신세대의 성향인 것이다.
2009년도 말에 화폐 개혁이 실패하고 주민들의 원성이 심했을 때 북한 김영일 내각총리가 공식 사과를 하고 박남기 재정부장을 총살 시킨 것도 신뢰를 잃은 정권이 국민들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새 정권을 장악한 지도층들이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읽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국민적인 지지가 없는 상황 속에서 급변 사태 시 민심이 반대되는 결정을 하는 것은 더 큰 위험을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 주민들의 마음이 중국보다 남한에 더 기울어져 있다면 북한지도층은 중국 보다는 남한 쪽으로 손을 내밀 가능성이 클 것이다.
한류가 전파되면서 북한 주민들의 남한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통일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류가 더 많이 전파되면서 북한 주민들의 마음이 중국과의 연합보다는 남북통일을 선호하게 된다면 이것은 북한정권이 향후 중국과 남한중에서 선택을 할 때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류와 함께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남한 쪽으로 돌릴 수 있는 중요한 변수는 탈북민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남한에 거주하는 탈북민의 대부분은 북한에 송금하고 있다. 만약에 더 많은 탈북민들이 남한으로 입국하고, 이들이 남한 사회에 잘 정착함으로, 지금보다 더 많은 금액을 북한의 가족들과 친지들에게 송금한다면 이들이 북한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질 것이다. 남한에 탈북자를 둔 북한가족들의 남북통일에 대한 바램은 더 증대될 것이고 또 이들의 영향력은 북한 전역으로 확산될 것이다. 또 탈북민들의 살아가는 모습과 이야기들이 남한 TV 드라마나 라디오 방송 등을 통해 북한에 한류로 유입된다면 북한 주민들의 마음은 더욱 남한 쪽으로 기울어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남한 내 탈북민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통일에 긍정적이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예측하기 어려운 북한 실황을 보면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최선으로 통일을 추진해 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종류의 통일 시나리오를 가지고 다가올 통일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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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ffects of Korean Wave (Hallyu) in North Korea on The Unification of South and North Korea
Lee, Yong-Hee
(Professor, Gacheon University)
In mid 90s mass starvation in North Korea caused many North Koreans to cross over Amnokgang and Tumen River into China.
Since then the Korean Wave from South Korea flowed into North Korea through the defectors and Chinese smugglers. The Korean Wave that started since late 90s has increased its influence in North Korea and now become a popular trend among young people in their conversations, clothes, songs and dance. This paper discusses the role of the Korean Wave in changing the perceptions of the North Koreans, and its influence on the unification of South and North Korea in the future.
Especially, through surveying 100 defectors, consisting of 50 youth and young adults and 50 adults, we researched on the suitable unification strategy through the Korean Wave.
Particularly, this paper considers a positive unification strategy through the Korean Wave in North Korea, by comparing with the media of West Germany which played a leading role in changing the perceptions of the East Germans and unification.
Key words: Korean Wave, North Korea, North Korea Defector, The North Korea defectors’ Survey, Unification Strategy
* 가천대학교 글로벌경제학과 교수
***** 이 논문은 2014년도 가천대학교 학술연구비 지원에 의한 논문임.
: 『북한바로알기』서울: 자유와생명 (2014) 외.
*) 국제교류협력기구의 정기 탈북민 프로그램을 필자가 진행할 때 주제별로 탈북민들의 의견을 직접 들을 수 있었음.
**) 작업행동에 잠재위험성이 농후하고 재해를 일으킬 확률이 대단히 높은 행동을 말한다. (산업안전대사전, 2004.5.10, 도서출판 골드)
***) 중국에서 제작되어 북한에 저가로 대량 수입됐으며, CD와 DVD 재생뿐 아니라 USB 재생도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노트북과 같은 형태로 소형임)
****) 서독방송을 수신하는 동독주민들을 색출하는 캠페인, 송출시설이 있는 옥센코프 지역으로 향한 개인 안테나를 철거하였음
*****)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에서 국제교류협력기구에서 주관한 탈북청년들을 위한 MT(2014.8.6-9)가 개최되었고 탈북청년들의 남한 적응 및 정착을 돕는 좌담회를 필자가 주관하여 진행하였음
*) 필자가 민간대북방송 관계자 2명과의 인터뷰 내용에 근거함(2014)
**) 필자가 자유북한방송 관계자와의 인터뷰 내용에 근거함(2014)